• 흐림동두천 23.2℃
  • 흐림강릉 28.6℃
  • 구름많음서울 24.7℃
  • 대전 24.3℃
  • 흐림대구 24.3℃
  • 구름많음울산 25.0℃
  • 흐림광주 24.9℃
  • 흐림부산 24.3℃
  • 흐림고창 25.0℃
  • 흐림제주 26.1℃
  • 흐림강화 23.8℃
  • 흐림보은 22.9℃
  • 흐림금산 23.5℃
  • 흐림강진군 23.6℃
  • 흐림경주시 23.5℃
  • 구름많음거제 24.3℃
기상청 제공

추사체와 세한도를 완성한 곳 '김정희 유배지'

[제주N뉴스 = 황리현 기자] 추사 김정희 선생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추사 선생의 시그니처 추사체, 대표작 세한도 등은 역사책에서 잘 알려준다. 그렇다면 그 추사체와 세한도를 완성한 곳이 제주도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추사 선생은 제주도에 육지의 고급 문화를 체계적으로 알리고 정착시킨 첫 인물일 것이다. 작은 섬에서 먹고 사는 문제에 매몰돼 문화적 자산을 쌓을 수 없었던 제주도. 추사 선생은 그런 제주도에 문화적 기반을 만들어 놓았다.

 

추사 선생이 강산이 한번 바뀔 시간동안 제주도에서 지내며 어떤 생활을 했는지에 대해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김정희 유배지로 가보자.

 

김정희 유배지는 말 그대로 정쟁에서 밀린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에 유배와 머물렀던 곳이다. 추사 선생은 55세가 되던 1840년 왕의 심기를 불쾌하게 하는 상소를 올렸다 능지처참 당한 윤상도의 옥사사건에 연루되며 9년간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추사 선생은 그 상소문의 초안을 작성했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손발이 묶인 추사 선생은 학자와 예술가로서의 능력을 제주도에 풀어놓았다. 이곳에 머물며 추사 선생의 상징인 추사체를 완성했고, 그 유명한 세한도를 그려냈다. 추사 선생에게 사사받은 김구오, 강도순, 박계첨 등은 제주 필원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한다.

 

김정희 유배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추사관이다. 추사관은 조선 후기 대학자이자 과학자, 예술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의 삶과 학문,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지난 2010년 건립됐다. 추사관의 전신은 1984년 제주지역 예술인들과 제주사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건립된 추사유물전시관으로 운영됐다. 이후 전시관이 노후화되고 있는 사이 추사유배지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되면서 현재의 추사관을 재건립했다.

 

추사관은 모던한 건축양식을 따른 듯 하지만 건물 앞 고목과 한폭의 수묵화처럼 잘 어울린다.

 

추사관이 추사 선생의 대표작인 세한도에서 건축 디자인을 가져온 탓이다. 세한도는 문인화의 대표작으로 인정받아 국보 180호로 지정된 그림이다. 유배 생활 중 원하는 서적을 구하기 힘들었던 추사 선생을 위해 제자 이상적은 중국 사신으로 나갈 때마다 최신 서적을 구해 제주도로 보내줬다. 유배 전과 후, 변함없는 이상적에게 감동한 추사 선생이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림 뿐이었고, 겨울이 돼서도 변함없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이상적에 비유했다.

 

 

추사관 안으로 내려 들어가면 추사체가 실내 가득 채우고 있다. 굵고 가늘기의 차이가 심한 필획과 각이 지고 비틀어진 듯 파격적인조형미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한자의 획과 결부의 구성을 통해 기와 세가 살아있는 글씨를 창조했다고 평가받는다. 경학과 금속학, 고증학, 서학에 두루 밝아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독특한 자신만의 서체를 완성했다.

 

유배 전과 후,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추사체는 미세하게 달라진다. 기교가 넘쳤던 유배 전, 거칠었던 유배 중, 힘을 빼고 경지에 오른 70대. 추사관에서는 이 모든 글씨체를 확인할 수 있다.

 

추사관을 둘러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상 1층으로 연결되고, 밖에는 추사선생이 유배생활을 했던 집이 나온다. 이 집은 1948년 제주도 4,3사건 때 불타버리고 빈 터만 남았다가 1984년 강도순 증손의 고증에 따라 다시 지은 것이다. 이 집에서 머물던 8년 3개월째 완성한 것이 바로 추사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