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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다이어리제주]21살 뚜벅이의 제주도보름살기(수지篇⑤)

[제주N뉴스 = 여수진 기자, 한수지 시민기자]

 

 

제주 13일차(#대평리 #제주버스 #박수기정 #카페두가시 #고등어회)

 

좋았던 곳을 손에 꼽아본다. ‘대평리’에서 봤던 푸른 물결이 눈에 아른거린다. 구름이 단 한 점도 없는 날 가서 티 없이 맑기만 한 노을을 봐야 했던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오는 길에 포장해왔던 한라봉 케이크의 달달한 기분 좋음이 입속을 맴돈다. 화장도 하지 않는다. 옆 동네를 산책가는 기분으로 준비를 마친다. 노트북과 어제 책방에서 사온 책을 챙겨서, 최대한 가볍게 집을 나선다. 버스 시간을 잘 맞춰 나간다.

 

제주 버스 사이트는 정말 효자다. 이렇게 시간이 잘 맞는 버스 시간표를 태어나서 본 적이 없다. 종점에서 꽤 먼 정류장인데도 오차가 크지 않다. 대평리 정류장에 다다르면, 버스가 내리막을 따라 내려간다. 차도 옆에는 푸르고 노란 유채꽃, 내리막길 너머에는 파란 바다가 펼쳐진다. 언덕 아래의 아담한, 어딘가 비밀스러운 시골 동네를 방문하는 기분이다.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람을 만끽한다.

 

가기로 한 카페에 잠시 짐을 맡겨두고 책을 들고 박수기정으로 향한다. 며칠 전 내가 앉아있던 그곳, 정확히 말하면 ‘그 돌’을 찾아 걷는다. 당연히 여전하다. 날이 그날보다는 덜 맑아서 바다색이 조금 짙다. 조금 더 평평한 돌에 앉아 책을 꺼낸다. 저번에는 사진만 찍는데도 추워서 10분을 버티지 못하고 자리를 떴는데, 이젠 춥지 않다. 바닷바람이 꽤 세게 불어오는데, 이제는 때린다는 느낌보다는 간지럽힌다는 느낌이다. 여행을 와서 변화를, 그것도 계절의 변화를, 자연의 변화를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장기간 여행은 여러모로 신기한 경험을 선사하는구나'라고 생각해 본다. 또한 '예기치 않은 행운이 한 두번이 아니고 수차례 찾아오는구나'를 다시 실감한다. 그렇게 한 시간을 책을 읽다가, 바다를 보면서 노래를 듣다가, 사진을 찍다가 하며 보낸다. 머물렀던 바위 위에 책을 놓아 사진을 찍고 자리를 뜬다. 다음에 와도 알아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잊고 새로운 바위를 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한다.

 

 

대평리 정류장에서 내려서 100미터 정도 걸으면 ‘카페 두가시’가 나온다. 바다가 보이는 위치는 아니지만, 목조 자재와 소담한 정원이 충분히 제주스럽다. 바나나 케이크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해가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온라인 강의를 듣다가 결국 포기한다. 이런 공간에서 공부를 하는 건 사치 중의 사치이다, 하고 노트북을 접고 읽던 책을 마저 핀다. 케이크가 정말 부드럽다. 인위적인 맛이 나기 쉬운 바나나 크림이 적당히 달짝지근하고, 촉촉한 초코 시트와 만나 더 달아지는 대신, 부드럽게 풍부해진다. 쌉쌀한 아메리카노와 함께하니 이보다 행복할 수가 없다.

 

 

여섯 시 반쯤 짐을 챙겨 나간다. 대평리에 왔으니 일몰을 봐야 한다. 다시 바다 쪽으로, 혹시 해가 다 져버릴까 부지런히 뛰어간다. 오늘의 노을은 무슨 색일까, 두근두근한 마음이 앞서서 노트북의 무게 따위는 잊어버린다. 노을을 보기 위해 뛰는 건 해와 술래잡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누가 더 먼저 가나, 누가 더 먼저 숨나를 겨뤄보는 대결. 해는 해 대로, 나는 나 대로 최선을 다하지만, 자연의 관대함인지, 웬만하면 기다려준다. 슬슬 바다가 보이고, 절벽 너머로 붉은색이 비친다. 오늘은 구름이 조금 깔렸다. 덕에 붉은색이 더 멀리 뻗친다. 그리고 조금 옅어져 분홍빛을 띤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홍색이 구름에 조금 비치는, 은은하고 따뜻하게 퍼져가는 노을. 그렇게 좋아하는 노을을 보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슬픈 노래를 듣고 싶어진다. 이제 가야 한다는 아쉬움과, 이 아름다움을 혼자 봐야 한다는 아쉬움이 짙게 묻어나온다. 둘 다 아니고 곧 가야 하는 막차 시간 때문일 거야, 생각하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린다. 조금 늦는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최대한 높은 곳에 올라가 그 그림을 담는다.

 

 

“제주도에 왔으면 고등어회는 먹어봐야지”

 

숙소 사장님께서 하시는 말. 사실 웬만한 해산물에는 거부감이 없다. 그래서 “이 회는 어때? 비싸?” 는 내가 아빠한테 하는 단골 질문이었다. 고등어회에 대한 아빠의 대답은, 이 질문에 대한 최악의 답변이라 할 수 있는 “비리고 비싸” 였다. 하지만 그건 서울에서의 이야기. 제주도에 갈치 말고 고등어도 잡힌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색 조합이 죠스바를 닮았다. 등푸른생선 아니랄까봐, 생소한 비주얼이다. 사장님이 알려주시는 대로 김에 고등어회 한점, 밥 조금, 와사비 간장 조금을 올려서 한입에 넣어본다. 맙소사!!!!! 느낌표 다섯 개가 아깝지 않은 맛. 맛있다. 과하게 고소하다. 혀에 기름칠 제대로 할 수 있다. 부자가 되는 기분이다. 양념 때문일까 해서 회만 먹어봤는데도 전혀 비리지 않다. 하나로마트에서 산다면 한 마리에 만 오천원이면 먹을 수 있다는 고등어회. 제주도에 오면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강력추천한다.

 

 

제주 14일차(#송악산 #그레이 그로브 카페)

 

버스를 기다리면서 동네를 산책하고, 송악산 둘레길을 걸으러 간다. 미루고 미루다 이날까지 왔다. 송악산 둘레길은 올레 10코스에 해당한다. ‘산이수동’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정말 산 둘레를 걷는 거라서 입구와 출구가 비슷하다. 마음에 드는 방향을 선택해서 걷기 시작하면 된다. 나는 출구부터 걷는 걸 선택했다. 산은 산이다, 당연히 모든 곳이 평지는 아니다. 어이없게도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갔다. 겉옷을 벗어서 팔에 걸치고 열심히 걷는다. 산 둘레를 따라서 제주도의 너른 바다가 끝없이 이어진다. 위에서 보니 더 넓어 보인다. 아래가 바로 바다다. 절벽을 따라 걷는 길이다. 가슴이 뻥 뚫린다. 나아가기 위해 걷는 길이 아니라 보기 위해 걷는 길이다. 중요한 점, 물을 꼭 챙기자. 중간쯤 가니까 목이 말라서 정말 힘들었다. 입구 쪽으로 가면 작게 해산물을 파는 식당에서 물을 팔기는 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준비해서 나쁠 건 없을 것 같다. 관광객이 꽤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온 사람들, 등산복을 아래위로 빼입고 본격적으로 걸으러 온 사람들, 여자친구, 남자친구 사진을 찍어주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날 수 있다. 넉넉잡아 한 시간 반 정도면 코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걸을 수 있다. 입구로 들어가나 출구로 들어가나 의 차이는, 입구 쪽 길이 더 예쁘다. 예쁜 길을 처음에 보고 싶은지, 나중에 보고 싶은지에 따라서 결정하면 될 것 같다. 입구와 출구를 어떻게 아냐면, 가보면 안다. 나는 고진감래형 삶에 대한 동경 때문에 출구로 들어갔다.

 

 

결코 짧지 않았던 둘레길 걷기를 끝내고, 버스를 타고 갈만한 카페가 꽤 있는 사계로 향했다. 찾아간 카페는 ‘그레이 그로브 카페’. 원래 야채 창고였던 공간을 개조한 카페로 1층은 실내공간이고, 2층에 뻥 뚫린 루프탑이 있다. 실내는 반지하 느낌이 있다. 답답한 느낌이 아니라, 상당히 차분한 느낌이다. 커피가 안 들어간 라떼를 주문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느 감성 카페와 다르지 않게 상은 낮지만, 의자는 매우 편하다. 책을 읽다가 상담 선생님께 전화가 왔는데, 요즘 좋다는, 편하다는 이야기를 술술 말한다. 문장으로 만들어서 말한다. 회색의 차분한 공기가 편한 마음을 편한 목소리로 말하게 돕는다. 회색 콘크리트 속에서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그리고 너무 귀여웠던 고양이 보름이.

 

 

사계 해변에서 보는 일몰도 멋있다. 바다 너머로 해가 넘어가는 게 보이는 드라마틱한 광경은 아니지만, 제주답게 낮은 건물들과 야자나무 사이로 해가 넘어가면서 주변을 빨갛게 물들이는 풍경은 가보지도 않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를 연상시킨다.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버스 시간을 맞춰 정류장으로 간다. Gallant의 Weight in Gold를 들으며 버스를 기다린다. 선곡 이유는, 노을은 붉은데 나는 왜인지 황금기를 보고있는 기분이라서. 당연히 가사는 모른다.

 

 

제주 15일차(#제주여행 정리 #식과함께 #딱새우회)

 

마지막 날이다. 내일 간다. 아침에 일어나서 짐을 싼다. 많이도 어지럽혔다. 제집인냥 편하게 머물렀더니 제집인냥 더러워졌다. 웬만하면 단어 선택에 신중에 신중을 가하는 편이라서, 여행을 가면 무조건 “일정을 끝내고 ‘숙소’로 간다.”라고 말했는데, 어느 새부터 이곳을 ‘집’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만큼 편했고, 이곳이 아닌 곳을 상상할 수 없었던 내 집, 그런 집을 떠나려니 아쉬운 마음이 크다. 집에 가면 항상 있는 것들, 침대, 따뜻한 바닥, 물, 그리고 반겨주는 사람들. 놀랍게도 다 있었다. 사람을 떠나서 온 여행에서 사람 덕분에 얻고 느낀 것이 너무 많았다. 이 모순 가득한 여행이, 신기하게도 혼란스러운 그림이 아니라 고즈넉한 풍경으로 남았다. 초록 침구와 하얀 물 주전자를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자주 들렀던 식당 ‘식과 함께’ 이모님께 인사를 전할 겸, 점심을 먹으러 집을 나선다. 원래 비가 오기로 했던 예보는 애교였는지 해가 쨍쨍하다. 매일 걷던 길을 조금 더 자세히 둘러보며 걷는다. 오오르막길 중간에 항상 존재하던 그림들. 유채꽃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황구, 살아있는 나무인 줄도 몰랐는데 어느새 벚꽃이 피어있던 그 건너편의 나무, 아 이제 너무 힘들다 하면 항상 보이던 편의점, 그리고 그 자리에서 뒤를 돌면 보이던 바다, 목욕탕, 이발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벌써 일주일이 넘게 지난 날인데, 지금도 약도를 그려보라면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짙게 남았다. 그런 동네 길을 지나 식당으로 간다. 가장 맛있게 먹었던 전복소라게우밥을 시키고 사장님 옆에 앉는다. 그렇게 많이 가지도 않았는데 갈 때마다 말도 붙여주시고 밥도 더 주시고, 주는 게 너무 어려운 나는 여러모로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았던 곳. 밥을 먹으면서 내내 떠나는 것에 아쉬움을 토로하니까 “다 괜찮을 거야~ 또 오면 되지 뭘 아쉬워해~” 라고 말씀해주시던 그 여유가, 기만이 아니라 안아줌으로 느껴져서 마음이 편해졌다. 감사함을 느낀 수많은 이야기 중, 당당히 한 챕터를 차지하는 곳. 밥을 한번 차려주고 싶으시다는 마음에 또다시 감동하고 인사를 한다.

 

 

‘집’ 앞의 해변을 다시 나가본다. 처음에는 문만 나서면 바다라는 사실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매일 산책해야지 했는데 막상 몇 번 나가보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을 달래고자 첫째 날 앉아있던 벤치를 찾아 앉아서 책을 펼친다. 밥만 먹었는데 오후네, 해가 이제 슬슬 지네, 하면서 젤리를 까먹는다. 서울 가면 집 앞 동네를 흥미 있게 산책을 해볼까, 하면서 책장을 넘긴다. 바람이 점점 세진다. 내일은 비가 온다더니 구름이 점점 짙어진다. 집에 갈 시간이구나, 하고 가방을 챙겨 나선다. 구름에 가려 해 지는 게 안 보인다. 마지막 날인데 내 속도 모르고 그냥 어두워지기만 하는 하늘에 괜히 심술을 내면서 모래사장을 발로 몇 번 걷어찬다. 이 바다에서 해 지는 걸 보면서 꼬박꼬박 챙겨 들었던 노래들을 마음속으로 정리하면서 집으로 들어간다.

 

 

마지막 저녁식사를 함께한다. 이 부엌도 얼마나 그리울까, 나도 집에 가면 나무 수저를 사야지, 하는 생각을 하느라 밥 먹는 거에 통 집중을 하지 못한다. 올레시장에서 사 오셨다는 딱새우회, 생선회를 먹는다. 딱새우회를 처음 먹어봤는데 고소하고 달달한 맛이 사람들이 찾는 이유를 단번에 알게 해준다. 사장님 부부가 제주에서 살아온 얘기, 서울에서의 직장 얘기를 들으면서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저녁을 보낸다. 날이 다 갔다. 이곳에서는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밥만 먹어도 쓸 말이 이렇게 많다. 마지막으로 짐을 챙긴다.

 

 

제주 마지막 날(#제주도비 #제주공항 #제주도여행끝 #김포공항)

 

비가 대차게 온다. 아무런 생각 없이 뒷문에 내놨던 운동화가 쫄딱 젖었다. 드라이기로 말리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별로 짜증이 나지 않는다. 어쩐지 아무 일도 없었다 했어, 하고 그냥 젖은 신발에 발을 우겨 넣는다. 발이 젖는다. 그러던가...

사장님이 차를 태워주셔서 식당까지 뽀송하게(발 빼고) 도착한다. 이웃 분의 가족 생신이 있다고 요리하신 잡채를 얹은 잡채밥과, 식당 메뉴와 같은 밑반찬까지 한 상을 받는다. 마지막 끼니까지 맛있게 먹는다. 혼자인데 혼자가 아니어서 모든 끼니를 너무 잘 챙겨 먹었다. 서울 와서 몸무게를 재보니 쪘다. 그렇게 돌아다녔는데... 그만큼 너무 많은 감사를 느낀 것으로 포장했다. 다음에는 엄마 데리고 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나온다. 빌려주신 우산을 쓰고 제주의 비를 맞으며 다시 동네 길을 걷는다. 기특하게도 온 첫날부터 마지막까지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았다. 마지막 오늘 빼고. 너도 아쉽니, 나도 아쉽다.

 

 

제주 공항 리무진을 타러 창천리 정류장으로 간다. 여자 사장님과는 집에서 인사를 나누고, 남자 사장님과 귀여운 딸내미는 정류장까지 차로 날 데려다주시고. 한 것도 없고 난 그냥 지나가는 고객 하나뿐일 텐데, 이렇게 아쉬워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 반, 죄송한 마음 반. 역시 사람은 사람 없이 못 사는구나.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이 되뇐 말을 또 곱씹으면서 나도 인사를 전한다. 당연히 영영 마지막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확한 기약이 없는 멈춤은 끝이니까. 작별인사였다고 할 수 있겠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우리 귀여운 동생이 나 간다고 한 자 한 자 적어준 편지를 읽어본다. 귀여운 그림과 연필을 꽉 잡고 글씨를 쓰는 고사리손이 눈에 그려질 정도로 또박또박한 편지글, “좋은 사람 만이(많이) 만나요, 행복하세요.” 라는 문장을 보고 결국 울었다. 원래 아이의 편지에는 엄마 아빠의 말이 같이 들어있으니까, 갑자기 세 명에게 큰 응원을 받은 것 같아서 벅찼다. 식당 사장님이 갈 때 울지 말고~ 할 때 에이 뭘 울어요! 하고 손을 흔들었던 게 생각난다. 너무 좋은 시간이었구나. 이게 울게 되네. 하다가 순식간에 잠이 들었고, 눈 떠보니 공항이었다. 저번에 왔을 때는 “곧 올게, 조금만 기다려용”하고 비행기에서 제주와 인사를 나눴는데, 이번에는 아니다. 곧 올 것 같지는 않다. 질렸다기보다는 그냥 그래도 될 것 같다. 그래서 새로운 인사를 한다.

 

“안뇨옹~ 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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